우즈베키스탄 고려인마을 더스트릭 여행 후기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마을 더스트릭, 그들의 한국어는 아직 살아 있다
100년 전, 역사에 떠밀려 낯선 땅에 발을 디딘 한국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시 그들은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당했고, 그곳에서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고려인'이라 불렀고, 그렇게 오늘날까지 여러 세대를 거쳐 그 후손들이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언어도, 문화도 많이 희미해졌지만, 여전히 한국어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고, 한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마을도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즈베키스탄의 작은 고려인 마을 ‘더스트릭(Dustlik)’을 직접 찾아가 보았습니다.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요. "한국어를 기억하는 고려인을 직접 만나보자."
강제 이주의 흔적 속에서 지켜낸 한국어
더스트릭은 수도 타슈켄트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한 마을로,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이곳을 찾기 위해 현지 택시를 탔는데, 거리로는 약 20km, 비용은 단돈 5,000원. 물가 차이도 흥미롭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마을 어딘가에 아직도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을을 걸으며 만난 어르신 한 분은 조선말이라며 저를 반겨주셨습니다. 한국어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소통이 가능했고, 그 억양은 분명 함경도나 평안도 등 북한 방언에 가까웠습니다. "너 몇 살이냐?", "결혼은 했냐?", "방탕하면 안 된다." 어르신의 따뜻한 덕담 속에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옛 한국의 정서가 살아 있었습니다.
그분은 서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고, 제가 만난 첫 번째 한국인이라고 했습니다. 제 이름과 나이를 여러 번 물어보시며 기억하려 하셨고, 그 모습에서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단순한 여행 이상의 의미를 지닌 순간이었습니다.
고려인 학교에서 만난 한국어 교실
뿌라비다 PuraVida마을 안쪽에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닌, 고려인 정체성을 이어가기 위한 거점이었습니다. 저는 이 학교에서 한국어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고, 아이들과 함께 교실을 둘러보며 수업 현장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또박또박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고, 태극기와 한글이 걸려 있는 교실은 마치 한국의 한 초등학교를 연상케 했습니다. 책상 위에는 한국어 교재와 태권도 도복, 한복 사진 등이 있었고, 벽면에는 한글날 행사 사진과 함께 고려인의 역사를 설명하는 전시물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현지에서 태어난 고려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직접 한국어 교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학교에는 과거 고려인이었던 졸업생들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을 거쳐 갔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고려인의 손맛, 우즈벡 한식당의 놀라운 맛
여정을 마무리하며 마을 인근의 한식당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고려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외관은 현지 식당과 다르지 않았지만, 메뉴판에는 '만두', '김치', '국시' 등 반가운 이름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맛본 김치는 놀라웠습니다. 한국에서 먹는 김치와 거의 똑같았고, 오히려 더 깊은 맛이 느껴졌습니다. 만두는 속이 꽉 차 있었고, 고기와 야채의 조화가 뛰어났습니다. 국시는 시원한 국물과 탱글한 면발이 어우러져, 해외에서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디저트로 나온 작은 슈크림빵. 한국의 ‘슈’와 비슷한 맛이 나서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음식의 가격이 저렴해, 여행자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한국어를 지키려는 작은 노력들이 만든 기적
우즈베키스탄 더스트릭 마을은 크지 않았고, 처음에는 낯설고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를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며, 언어와 문화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쉰다는 걸 느꼈습니다. 아이들이 또박또박 말하는 "안녕하세요"라는 한마디, 어르신의 북한 사투리 섞인 덕담, 그리고 김치 한 입에서 느껴지는 정서까지.
이 마을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의 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살아 있는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마을이 보여준 한국어의 힘은, 우리가 해외에 나가 얼마나 더 많은 문화적 가치를 전할 수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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